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문단 편집) ==== 일반인 희생자 이야기 ====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들은 단원고 학생들과는 다르게 수학여행이 아닌 개별 여행 및 제주도로 귀농을 하기 위한 목적 등을 안으며 세월호에 올랐었다. 단체 여행으로 있던 단원고 학생들과는 달리 일반인 승객들은 개별 목적 및 여행이 대부분이라 각자가 행동하였기 때문에 단원고 희생자들에 비해서 희생자 수가 적은 편이었다. 그 중 미수습자로 알려진 권재근 씨와 아들 권혁규 군(당시 6세)은 [[베트남]] 출신의 부인 또는 어머니[* 이름은 한윤지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중 유일하게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어 수습되는 방식으로 차가운 세월호에서 내렸다.]와 딸 또는 여동생[* 이름은 권지연이고,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 중 유일하게 생존자다. 권재근, 한윤지 씨 부부의 딸이자 권혁규 군의 여동생인 권지연 양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고아가 되어 현재는 큰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다. 참고로 단원고 출신의 세월호 생존 학생 75명 중 한 명인 박호진 학생이 그녀를 구해주었다.]과 함께 제주도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세월호에 타게 되었다. 사고 전까지만 했어도 제주도에 가서 감귤 농사를 지으며 제주인으로서의 삶을 꿈꾸었던 이들이었기에 기대도 컸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로 이들은 제주 땅을 밟지 못하고 진도 해상에서 세월호에 갇혀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해저에 [age(2014-04-16)]년 동안 수장된 상태로 있는 상황이다. 부인은 이미 숨진 것으로 알려졌고, 당시 5세였던 어린 딸만이 유일한 생존자 및 구조자가 되었다. 현재 딸은 권재근 씨의 형님인 큰아버지가 보호자로 보호하고 있는 상태이다. 세월호 선원 중 한 명이자 의인으로 알려진 박지영 씨는 20대의 젊은 선원으로 [[수원과학대]]를 휴학하고 생업을 위해 청해진해운에 입사하여 세월호 선원(아르바이트)으로 승선하게 되었다. 상관인 이준석 선장과 나머지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갔던 와중에도 자신은 끝까지 승객들의 대피를 유도하였으며, 동생들과도 같은 단원고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학생들에게 먼저 탈출하라고 지시하는 등 선장과 나머지 도망간 선원들과는 다르게 선원의 본분을 지키며 승객 일부를 구조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끝내 본인은 세월호에 탈출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희생되어 싸늘한 시신이 되어있었다. 이 당시 박지영 씨의 나이는 한창 젊은 22세였다. 박지영 씨와 함께 세월호 사무장으로 있었던 양대홍 씨는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며 부인과의 마지막 통화를 하고 난 후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끝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상관인 선장과 나머지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갔던 와중에도 동료인 박지영 씨와 함께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가족들에게도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사망하였다. 세월호 침몰 때 민간 잠수사로 활약했던 이광욱 씨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는 목표를 삼으며 인도선을 세월호에 연결하고자 바다에 입수하게 되었지만, 잠수 중 호흡곤란을 앓게 되었다가 끝내 숨지게 되었다. 청해진해운 커플 사원으로 알려진 정현선, 김기웅 씨는 결혼을 앞두고 세월호 승무원으로서 승선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세월호 침몰 당시 무사히 탈출하게 되었지만, 배 안에 갇힌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두 사람이 모두 숨지게 되었다. 두 사람의 희생은 한 번 세월호를 빠져나오고 나서 완전히 도망친 상관인 선장과 나머지 동료 선원들과 대비되는 사례이기도 하였다. 미수습자 중 최초로 일반인 신분으로 유골이 발견된 이영숙 씨는 단원고 학생들과 함께 세월호 한 배에 탔던 일반인 승객이었다. 2014년 4월 15일 밤 단원고 학생 및 나머지 일반인 승객들과 세월호에 승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진도 해상을 항해하던 세월호가 침몰하게 되었을 때 이 씨는 그 당시 세월호 3층 선실에 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끝내 세월호 선내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세월호 안에 3년 동안 해저에 수장된 상태로 있었다가 2017년 5월경에 신원미상의 유골로 발견되었고, 6월 5일 유골 감식 결과에 따라 이영숙 씨의 유골이었음이 확인되면서 세월호 299번째 사망자이자 일반인 승객으로는 최초로 미수습자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그녀의 유골은 아들 박경수 씨[* 1986년생]에게 인계되었다. 현재 이 일반인 희생자들의 유해는 모두 [[인천광역시]] [[부평구]]의 [[인천가족공원]]에 안장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